살면서 사과할 일이 없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러한가. 모르고 한 일부터 작정하고 한 일까지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사과를 하고 산다. 사과라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모든 언어권에서 동일하게 존재하는 언어적 행위이다. 그러나 넓게는 나라와 문화마다 좁게는 개인마다 사과하는 방식과 사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과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인데 때로는 자신이 직접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사과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자식이 잘못한 일에 부모가 대신 사과를 하는 거처럼 말이다.

  학자들은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이런 사과 행위를 늘 궁금해했다. 사과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고 어떤 언어학자는 다음과 같이 사과를 말하기도 하였다. 사회학자 고프만(1967)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체면(face)’이라고 보았다. ‘체면’은 곧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자신의 사회적인 이미지를 말한다. 언어학자 브라운과 레빈슨(1978)은 이런 ‘체면’ 개념이 사과 행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과를 할 때 우리는 ‘체면이 깎이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체면이 깎이는 고통이 수반되는 행위이니 사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바꾸어 말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는 것은 나의 체면이 깎이는 행위임에도 그 행위를 통해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고 더 나아가 자존감을 살려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과’는 어렵지만 고귀한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과 행위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이 체면이라는 것이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놓을 수가 없는 것일까? 요즘 뉴스의 사회면을 보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면 끝날 수 있는 일도 핑계를 대고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나머지 심하게는 상대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기 분화가 잘 되어 있다는 것, 성숙하다는 것은 사과 행위 하나를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나는,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모르고 실수를 했을 때 혹은 알고도 잘못했을 때 우리는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가? 상대의 마음을 챙기면서 상대의 체면을 살리는 사과를 하는가? 아니면 방어하기에 급급한 말뿐인 사과 행위만 하는가?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이다. 상대의 구겨진 체면을 살리고 상처 난 마음을 보듬는 진정한 사과 행위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