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에 대한 小考  

     정한나

      나는 평신도 선교단체에서 오랫동안 훈련받고 사역을 했다. 그러면서 사역 연차가 쌓일수록 리더쉽의 위치에서 본의 아니게 상담자 아닌 상담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내가 본의아니게 상담자의 역할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상담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담공부를 시작하고 임상수련을 본격적으로 받게 되면서 상담을 하려면 무엇보다 경청을 잘 해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경청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모아야 하고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내담자에게 오롯이 집중을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기나긴 투병생활을 할 때 대체의학에서 배운 ‘마음 모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대체의학에서 말하는 ‘마음 모으기’는 걷기연습부터 시작하였다. 마음을 모으기 위해 걷기연습을 하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에 온전히 온 몸의 신경을 두면서 집중하며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흙으로 된 산책길에서 맨발로 발뒤꿈치부터 땅에 대고 천천히 발바닥의 중심을 지나 엄지발가락까지 땅에 내려놓기까지 한순간도 발에서 신경을 놓치지 않고 발에만 집중하면서 발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들을 따라 마음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 활동은 아침과 해질녘에 하루 두 번하게 되었는데 한쪽 발을 들어서 발뒤꿈치부터 천천히 땅에 내려놓고 다시 다음 발을 들어서 발뒤꿈치부터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활동이 언뜻보면 굉장히 쉽게 보이지만 막상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해보면 결코 쉽지않은 것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같은 과정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보이니까 모두들 가볍게 시작을 하지만 서너걸음을 옮기다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금방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걷기를 시작하고 발에 온 신경을 모으고 집중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다른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고 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발에 온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발에 집중한 마음은 발에서 멀리 떠나 버리고 만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또한 우리가 어느 곳엔가 마음을 집중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방해꾼이 다름 아닌 우리 안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 집중하려고 하는 바로 그 생각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어디서 피어오르는지도 모르게 이 ‘생각’이라는 놈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된지도 모를 이 ‘생각’이란 놈들이 하염없이 우리 마음을 헤집고 여기저기서 새어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발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데 그러면서 놀라운 것은 발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각이 줄어들고 잡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임상현장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한다는 것은 얼핏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기위해 자신의 모든 생각을 중지하고 오롯이 내담자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담자가 마음을 모으고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내담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하는지를 잘 따라간다는 것은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든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하는 것과 같이 내담자에게만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자가 임상현장에서 내담자와 만날 때 ‘그 현재’와 ‘그 내담자’에게만 머무르는 훈련은 많은 시간과 수련을 요하는 과정이며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담자는 임상현장에서 내담자와 단 둘이 마주앉아 내담자만을 눈앞에 두고 경청을 잘해야지 하면서도 마음 모으기를 실패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때가 너무나 많다. 어떤 상담자들은 “아니요. 저는 내담자를 앞에 두고 아무생각없이 내담자에게 잘 집중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담자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생각이 없이 내담자를 만나는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상담자가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상담자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 어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담자는 여자구나, 이 내담자는 동그랗게 생겼구나, 이 내담자는 이런 옷을 입었구나, 이 내담자는 피부가 검구나. 이 내담자는 땀이 많이 나는구나, 이 내담자는 비호감이구나, 이 내담자는 말투가 이상하구나, 이 내담자가 이런 얘기를 왜하지? 등등 수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내담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담자는 어느 샌가 지금 여기서 만나고 있는 내담자를 놓치게 되고 내담자의 이야기를 배경음악삼아 상담자의 생각 속에 휩쓸려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같은 상황은 상담자가 사례보고서를 쓰기위해 상담을 정리할 때 분명하게 확인이 되기도 한다. “어머! 내담자가 이런 말을 했었네. 어머! 이때 상담자인 난 왜 이걸 못들은 거 같지?”라며 비로소 임상현장에서 경청이 제대로 되지 못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상담자라면 누구나 이런 순간을 맞딱드리고 자괴감에 빠지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상담자가 임상현장에서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담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잘 경청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훈련, 내담자에게 머무르는 훈련을 하고자 ‘걷기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