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성 삶의 이야기 -

                                                                               - 이 준 선-

식물이 바람에 일렁인다. 미세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오묘한 색감에 빠져들다 바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요즘 많이 유행하는 말로 식멍이다(무언가에 빠져 생각을 비우고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멍”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멍, 물멍, 노을멍 등등이 있다). 식물의 생김들과 작은 일렁임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평온해져 온다.

시골에서 자란 성장배경 탓인지 식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식물이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깝다. 처음에 식물에 빠져 각종 다양한 식물들을 들이기 시작했을 때는 자주 식물들을 살리지 못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식물은 이러할 것이다. 라는 나의 전제하에 무조건 내가 좋은 것을 주었던 것이 폐단이었다.

- 식물의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 식물은 물을 자주 주고 따스한 햇볕에 놓아주고 공기를 쐬어주면 다 크는 줄 알았다. 물론 그렇게 맞아서 잘 성장한 종류들이 있다. 해피트리, 벵갈고무나무 등은 키가 훌쩍 크고 성장해서 멋있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예민한 제라늄이라든가 베고니아 종류들은 모두 무르거나 햇볕에 타서 죽어나갔다. 각 식물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섬세함이 필요한 식물들은 속절없이 죽었다.

상담을 하려면 자기 이해와 내담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듯이 식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식물에 대한 특성 및 원산지 공부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몬스테라 종류들은 잎사귀가 크게 성장할수록 찢어진다. 열대 우림이 원산지인 몬스테라 종들은 크고 빽빽한 나무 아래서 나무를 감고 성장하는데 크고 우람한 큰 나무들에 가려 햇볕을 공급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큰 나무들에서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는 그대로 맞을 경우 잎들이 다 상하거나 부러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몬스테라는 스스로 자기의 잎을 찢어 빗물이 아래로 빠지도록 선택을 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잎을 찢으므로 아래 뿌리와 잎들에게도 빗물을 내려 보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온몸에 전율이 오는 것 같았다. 몬스테라로서는 생존을 위해 자기를 스스로 찢은 셈이다. 몬스테라의 아름다움은 고통 뒤에 오는 훈장 같은 것이다.

- 모든 부적응들이 그때는 적응적이었을 것이다.

상담을 식물에 잠시 비추어보자면 내담자들 또한 그때 왜그랬을까에 대한 이해가 되고 그것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기제에서 나온 자기보호 프로그램이 가동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자기를 덜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파편화 되어 있던 기억들이 구슬 꿰어지듯이 맞춰지고 자기에 대한 설명체계가 완성이 된다. 그럴 때 아하! 가 일어나고 자기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대처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부적응에서 나와 지금 여기에서의 적응적 행동으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많이 본다.

첫 내담자가 오면 나는, 내담자의 경험의 세계를 탐색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나의 경험은 이 상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탐색하며, 무엇이 이 내담자로 하여금 지금의 이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었는지, 왜 이런 헛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른바 특성 파악이다. 그리고 그 헛된 노력을 멈추고 지금의 적응적인 것으로 가져오는 것도 내담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선택을 참고 기다려 주려한다. 또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자리에서 상담자로서 먼저 지쳐 도망하지 않도록 과정을 잘 견뎌주는 상담자가 되려 한다. 마치 하나의 새로운 식물이 내게 맡겨진 것처럼 그에 맞게 돌보고 가꾸어 주되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믿고 자기대로 성장해가길 기대하면서.

- 식물이야기로 마치려 한다.

식물연구가 오병훈님은 “모든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때로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이 세상에 게으른 식물은 없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사람인들 무엇이 다를까... 이제 나에게 오는 식물들은 조금은 덜 죽어나간다. 때로 나의 바쁨으로 인하여 식물의 필요를 채워주는 시간이 부족한 날들이 지속되는 경우 외에는 나의 관심 안에 있는 한 식물들은 안전하다. 그러나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식물들이 온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때는 또 다시 공부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마음의 여유가 적어 당분간은 새로운 식물에 대한 확장은 없을 듯하다. 그러니 있는 식물을 잘 가꾸어 살아보고자 한다. 아주 여유로운 식멍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