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칼럼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이냐?”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던 예수라는 사람을 심판해야 하는, 꿈자리가 좋지 않으니 그와 상관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흔들리던 유대 행정관, 세기의 재판관이던 빌라도 총독의 질문이다. 민란이 날 정도로 거센 유대인들의 요구에 빌라도는 예수의 죄목을 찾기 위해 심문해 보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는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세상에 왔다. 누구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빌라도가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과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그리스도임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 자주 사용한 헬라어 Aletheia는 ‘진리’로 번역되는데, 실제(實際), 사실, 확실함, 진리, 드러냄 등의 의미가 있고 탈 망각, 탈 은폐의 뜻도 있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 변치 않는 절대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그러한 가치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갈급하고 추구하고 밝히고자 했던 것, 바로 진리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에 초점을 둔, 실제로 본인이 보거나 들은 경험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직접 하거나 느끼는 것,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드러내고 진술할 수 있는 Aletheia, ‘진리’의 경험을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놓임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의 교훈이기도 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뜻은 사실, 실제, 진실, 드러냄의 ‘진리’를 통해야 우리가, 우리가 만나는 많은 내담자가 그토록 고대하는 자유를 느끼고 누리게 된다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삶에서 나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하고 형성한 생각의 틀에 기반을 둔 왜곡된 자기 신념으로 인해 살아가며 마음의 상처와 병, 그리고 관계의 문제로 고통받는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를 주창한 Ellis는 삶의 경험과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과 사건에 대한 해석이 고통을 자아내고 증상을 만든다고 하였다. 사안과 현황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마음먹은 것을 해내지 못하는, 반복해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자신을 의지박약, 우유부단하다 자책하여 고통받던 내담자가 말했다.

(실제 상황에 기반을 두고 각색하였음)

“가만히 보면 저 스스로 저의 삶을 망치고 있는 거 같아요. self-sabotage라 할 수 있겠죠.”

내담자는 상담자와의 관계 경험을 통해 점차 부정적인 정서가 완화되어감을 주관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삶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위해 행동을 결심해 보지만 실행에 옮기려다가 멈추고 마는 자기의 행동 패턴과 이유에 관해 생각해보았다며 말을 이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정말 힘들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 방해(self-sabotage)와 파괴적인 선택이 이어졌다고 하였다. 변화의 동기가 낮았다거나 막상 실행하려고 하니 시작이 어렵더라는 말로 자기의 미적거림을 설명하지 않았다. 자기 기대와 현실 사이 격차가 커, 자기 자신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마주하는 게 어려웠다는 그 말이 얼마나 진지하고 솔직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이 생각까지 오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내담자의 자기 이해와 자기인식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인지, 그의 Aletheia를 향한 긴 마음의 여정이 느껴졌다. 그는 눈감고 싶고 보기 어려웠던 자기를 조금씩 서서히 눈을 열어 봐주려 용기를 내어 부족하고 열등해 보이는 자신을 스스로 보듬기 시작하고 있었다.

히긴스(E.T. Higgins)는 자기 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을 통해서 실제 자기, 이상적 자기, 의무적 자기로 영역화된 자기표상 간의 불일치가 자아내는 불편한 정서 상태에 관한 경험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기표상 간의 불일치 유형에 따라 사람은 다른 부정적 심리상태가 되는데, 이는 불만, 실망, 슬픔과 같은 낙담 관련 정서를 유발하는 ‘긍정적 결과의 부재’ 상태와 초조, 위협, 두려움 등 초조 관련 정서를 유발하는 ‘부정적 결과의 존재’ 상태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자기와 이상자기의 불일치는 자기의 소망과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여 긍정적 결과의 부재 상태를, 실제 자기와 의무 자기의 불일치는 자기 처벌을 예측하게 하여 부정적 결과의 존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긍정적 결과의 부재 상태는 실망이나 욕구 충족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부정적 결과의 존재는 죄책감, 자기경멸, 불안감의 정서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위의 내담자는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 사이, 의무적 자기와 실제 자기 사이 간극을 보기 전, 자기 실제 모습을 마주하기 어려워했고 이상적 자기의 수준을 설정하지 못해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의무적 자기의 모습에 눌린 실제 자기를 차마 보지 못하며 자신의 욕구와 소망에 어울리는 이상적 자기를 설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마침내 자기의 형편과 그저 그런 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며 자기 현재를 타진하고 있다. 지금 자기 현안이 무엇인지, 예전엔 보지 않으려 눈 돌리던 그 증상에 조심스레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며 상담자와 자기의 마음을 나누고 있다. 명실상부 ‘자기’가 되고자 힘쓰는 중이다. 진리에 이르러 이미 자유로워 보이는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