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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홍한나수련수퍼바이저 2023-10-02 356
1월 제 2의 아버지
수련수퍼바이저로 수련생들과 만나면서 나의 스승님이 많이 생각난다. 선생과 스승이라는 개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 이상으로 ’인격적 감화를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나의 스승님은 그러한 분으로 나에게 내면화 되어 있다. 내가 스승님의 수퍼비전 팀에 처음 들어가게 된 것은 2015년도의 일이다. 스승님은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명예교수로 은퇴를 하신 심리학자로, 처음 뵈었을 때 이미 70세를 넘긴 백전노장과 같은 분이셨다. 정신도 몸도 꼿꼿하셨다. ‘서울대학교 임상심리학 박사 1호, 국내 대학병원 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 1호, 임상심리학회 회장 2회 역임, MMPI를 국내에 처음으로 표준화 시킨 분, 심리평가보고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분, 국내 임상심리학 역사의 대가’ 등 그분의 수식어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도 많을 것이다. 스승님은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매우 소박하고 단아한 분이다. 옷도 많지 않다. 가끔씩 겨울에는 춥게도 보이셔서 안쓰럽다. 공부가 있는 날은 늘 우리들 보다 30분은 먼저 와 계신다. 오셔서 공부하고 계시면 우리는 하나둘 모인다. 스승님은 교육철학이 있다. 공부한 날은 꼭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님이 ‘도제식 교육’이라고 하셔서 나는 당연히 원래 이 분야가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스승님은 ‘밥을 같이 먹는 것’이 도제식 교육 이라고 하셨다. 병원 계실 때 의국에 모여 선배 의사들과 밥을 먹으며 거기서 수많은 진단들이 쏟아지고 진단을 세분화 시키며 개념들을 세워가신 것에서 그 시간의 가치를 느끼셨던 모양이다. 또한 서로의 부족한 점, 단점도 봐야 성장하고 통합할 수 있다고 하셨다. 스승님과 밥 먹은 시간들도 내게 내공이 되어있을까. 그래도 그 시간은 지금도 쉽지않다. 스승님과의 추억이 많지만 아팠고 성장했던 일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불안한 상황을 잘 직면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넘기는 일종의 회피 방어기제를 쓰고 있었다. 나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라 통제가 잘 안되었다. 나의 사례발표일에 스승님이 무언가를 지적하셨는데 그날도 나도 모르게 또 웃었다. 그 순간 스승님은 호통을 치셨다. “웃어?”. 적막이 흘렀다. 스승님의 한마디에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수치심이 느껴졌다. 너무 감당하기 힘들었다. 울고도 싶었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이후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 일로 며칠 앓고 나서 그 웃음의 방어기제가 많이 사라졌다. 스승님은 나에 대한 치료법을 직관적으로 알고 그러셨던걸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불안을 직면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회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면화된 스승님의 상은 심리평가와 해석상담할 때 자아의 일부가 되어있다. 다루어 보지 못한 사례가 와도 헤쳐나갈 자신감이 있다. 좋은 수퍼바이저, 스승과의 관계와 만남은 전문가의 단단한 자아를 갖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2의 부모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상담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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